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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장날(성남 5일장)과 소전(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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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포스트
기사입력 2004-08-09

성남 5일장 과 소전(우시장)



성남5일장은 계절에 따라 물목이 바뀐다 특히 명절을

앞둔 성남장터는 만물상을 방불케한다.

소전, 옹기전, 싸전. 쏱전, 포목전, 내복전,

염색전, 나무전, 비료, 잡화, 감, 떡, 폿죽. 장터국밥,

주막집, 약장사까지 시장의 규모도 확장되어 장터를

벗어나 양편 도로(국도를 포함)를 점유함은 물론이려니와

지금의 우정삼거리(지하차도)에서 성남동 사거리까지

뻗힌다.

5일 장날은 울산읍네의 흥겨운 잔치날이요 울산 군민의

만남의 날이기도 하다. 물건을 팔러는 오는 사람,

사러오는 사람이 언양 새에동골에서 방어진 목고레이까지

온 울산군민들이 나들이 옷으로 갈아 입고 장보러 나오는

날이다. 이 만남의 날에 비로소 멀리 떨어저 그동안

궁금했던 소식도 물어보고 집안 안부도 전하고 동리

길흉사간 통지나 봉채 보낼 궁리, 시집간 딸네 소식도

듣는다.

이른 아침에 소구루마를 타고 오거나 콩나물 시루 같은

버쓰나 장차로 오고 혹은 먼길을 걸어서 온 장꾼들은

아침장에 거지반 볼일을 다 보고 나면 시장 주변의

주막집으로 옹기종기 모여서 구수한 멸치 다신물에

말아주는 국수나 소고기 장터국밥을 맛있게 맛있게

먹으면서 태화 막걸리 한사발걸치면 이제 잔칫날 처럼

이야기 꽃을 피운다.

소전에는 제법 큰 밑천을 가지고 지방 우시장을 누비는

소장사들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돈전대를 허리춤에

두르고 소구전꾼과 고함을 지러며 한창 흥정을 벌리던

모습, 소를 팔아 논밭 사고, 내년 농사를 위해 일 잘하는

소로 바꾸는 농민 또 송아지 팔아 딸치우고 서울에 간

아들 학자금 마련하려는 농민들이 모처럼 큰 돈을

만져보고 흐뭇해 하는 모습들이다. 특히 우리집은 소전

맞은편 한 외딴 기와집이였기에 마침 사진전에 우리

옛날집이 그대로 찍혀 나왔기어 더욱 감동적이 었는데, 집

건너편 소전에 그때 철도 레일(RAIL)로 만든 소를 묶는

쇠말뚝이 길게 수십줄로 열병식처럼 늘어서 있었는데 그

말뚝레일을 따라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줄지어 선 풍경

또한 이채로왔다. 여름철이면 소똥이 많았던 소전

버드나무 위에 메미들이 유난히 많이 찾아와 노래를 할

때는 정말 멋진 대자연의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듯 했다.

지금은 사라져 버렸지만 당시 인기 상품 가운데는

검정고무신 떼워주는 곳이 성업이었고, 즉석 휘호로

이름자 위에 멋진 그림도 그려주고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같은 좋은 글도 적어주는 노상

화가도 인기를 끌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손님은 끈

곳은 역시 유명한 부부 약장수였으니 등에다 북을

짊어지고 손으로는 목탁을 치면서 염불도 하고 춤추고

노래하면서 스탭을 맟추면 북이 절로 울리는 신기한

약장수의 걸죽한 가락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장이 파하면 다음날부터 장터는 주변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가을걷이 때는 타작마당이 되기도 했다. 빈

장터에서 축구, 야구, 땅따먹기, 자치기, 팽이치기,

볏단을 높이 쌓아올린 노적봉 위를 단숨에 뛰어 오르기도

하며, 그시절 우리 어린이들의 신나는 하루는 언제 해가

지는줄도 모르게 뛰고 꿀리며 굴뚝에 저녁 연기가 나야

집으로 향하는 신나는 놀이터였다. 지금은 큰울산

광역시의 꽉 들어찬 도시팽창화로 성남프라자도 들어서고,

요즘은 구시가지가 쇠퇴의 그늘에 가려 번성했던 그

시절의 영광도 잊고 있지만, 60-70년대 성남 5일장 파시의

넓은 마당이 그 시절 꿈의 빈 공간으로 자꾸만 나를

추억에 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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