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울산민주화의 역사 (8회)- 민노총의 산실 ‘울산사회선교실천협의회’

최종회

가 -가 +

울산포스트
기사입력 2021-02-19

현대왕국의 창업주 왕회장의 무용담은 계속된다.

그런데 말이야, 그 친구들한테 둘러싸여 한참 구호와 함성을 듣고 있자니까 한 순간 나도 머리띠 두르고 그 친구들 사이로 내려가 함께 하늘로 주먹을 뻗으며 구호와 함성을 지르고 싶어지더라고. 원래 나도 노동자 출신이라서 그런 생각이 들었나봐. 그런데 나는 누구를 향해서 구호를 외쳐대야 하나 생각해보니 도저히 안 되겠어. 그래서 그만 두었어, 하하하!”회의 중간에 느닷없이 던진 정주영의 이 말에 모두 너무 어이가 없어하며 태연히 미소 짓고 있는 그의 얼굴을 할 말을 잃고 쳐다보고만 있었다. 언뜻 수긍이 안가는 일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노동에 대한 경외심과 노동자들에 대한 속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젊은 시절 부두 노동자로, 건설 현장 노동자로 무거운 돌짐을 지고 가파른 비계를 오르며 허리가 휘는 노동을 해봤던 경험을, 지금은 고난의 시기로 기억하기보다 노동과 땀의 참된 가치와 보람을 느끼게 했던 값진 수양의 기회로 회고하며 오히려 흡족해 하였다.노사분규는 급기야 한 달을 넘어 급기야 석 달 열흘 씩 이어지는 극렬한 파업사태로 이어지고 결국 노사정의 협상이 결렬 되면서 정부가 회사 측의 입장을 적극 옹호하며 현대조선소 현장에 노동자의 수에 필적할 만큼 수 만 명의 전투경찰을 투입하여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처절하고 강압적인 진압 작전이 전개되었다.

 

조선소 샌드브라스팅(녹털이용) 중장비 차량을 앞세운 현대중공업의 3만여 근로자들이 오토바이를 앞세우고 구시가지까지 진출하여 노동3권을 부르짖다가 다시 방향을 틀어 이미 어둠이 깔린 시청광장으로 몰려들며 관용차량에 불을 지르고 시청사에 돌과 화염병이 비 오듯 날아들고 유리창과 기물이 파손되어 아수라장이 되었다.

 

13대 국회의원 선거를 마친 다음날 '이철'은 그동안 군사독재 정권의 종식과 이 땅의 진정한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감행하며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지들 앞에 깊이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그들의 노고를 위로한 후에, 비장한 자세로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되새기며 사자후를 토한다.

 

그의 목소리는 어둡고 험난했던 선거전을 치르고 난 사람 같지 않게 싱싱했고 아직도 맑고 패기에 넘쳤다.

 

<태화강 100리 굽이굽이 기름진 들판이 뻗어 내린 곳, 살기 좋고 인심 좋다던 울산이 지금은 오염된 공기와 썩은 물을 마시고 점점 시들어 가고 있다. 고향을 상실해 가며 태화강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울산공단의 오늘의 형편이 어떠합니까?>

 

<수출 제1지역이 공해 수입지대로 변모하더니 온산, 여천, 부곡, 용연 공단 주민들은 이제 자손 대대로 살아온 정든 산천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고 쫓겨 간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겠지요?

 

울산 공업도시의 공해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조상 대대로 행복하게 살아왔던 정든 고향 땅을 떠나거나 혹은 몇 푼 안 되는 보상으로 강제 철거시키는 잔인하고 임시방편적인 행정 처사에 이주대책은 근본적으로 다시 수립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항구적이고 범시민적인 울산의 공해 완전추방 특별대책기구의 설립이 시급합니다.

 

한 달에 생계비 미만의 저 노임에 혹사당하고 공해 속에 병들어 가는 노동자들이 양심선언을 하며 산재를 입고 신음하는 불쌍한 동료를 돕기 위해 사용자에게 항의를 하고 급기야 온 몸에 석유를 끼얹고 분신자살을 하는데도,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임을 착취하고 농민들의 토지를 수용해간 재벌 그룹들은 지금 어디에서 또 새로운 전략을 가다듬고 있을까요?

 

최저 임금보장이라는 빚 좋은 개살구로 노동자, 농민을 우롱하며 그간 군부독재는 이 땅의 근로대중의 신성한 땀의 대가를 가로채고 착취하여 금력과 권력의 왕국을 건설하고 소수 족벌 재벌을 기생시키고 있습니다. 이제야말로 항구적인 노동정책을 마련하고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여 노사가 고르게 잘 살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다시는 노동쟁의로 인하여 도시가 마비되지 않고 온 시민이 더불어 평화스럽게 살 수 있도록 노사 문제를 민주적으로 순리대로 풀어나가는 자율기구를 설치하고 노와 사 그리고 시민 대표가 함께 협의하는 항구적인 울산의 노사 시민 공동 위원회를 구성하여야겠습니다.>

 

이철의 연설이 끝난 후에, 다음 날 당원 동지들과 지지자들이 모여 이철의 성남동 196-6 번지 2층 사무실에서 "이철연구소"의 현판식을 열 것을 결의하고 해산했다.

 

한편 울산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해 오던 민주화운동 추진 세력과 해직 교사들 그리고 노동현장에서 "8시간 노동, 기본 생계비 보장, 노동3권을 을 줄기차게 주창하며 직접 노동조합 결성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집합체였던 울산사회선교회는 그간 무수한 탄압 속에서도 그 조직이 더 확대되고 더욱 가열 찬 투쟁의 조직체로 다시 "울산사회선교실천협의회"라는 이름으로 갈고 새롭게 거듭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온종일 시가지를 뒤지며 새로운 사무실을 물색하던 중 거의 모든 건물주들이 혹 자신들에게도 경찰의 감시와 권력기관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까 보아 임대계약을 체결하고도 이를 취소하여 아무도 장소를 빌려주지 않으려 하자, 숙의에 숙의를 거듭한 결과 최종 결론으로 신공화당 '이철'의 사무실 3층을 얻어 보기로 의논을 하고는 '이준' 시인을 대표로 보낸다.

 

그간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 울산을 아쉬워하며 항상 이철과 함께 오랜 군사독재 정치 타도를 외쳐 왔고 또한 문학인의 현실참여와 창작과 비판적 논쟁자였으며 한편 민주화운동에 동정적 참여자로서 아웃사이드의 오랜 동지이기도 한 '이준' 시인이 울사협을 대표하여 건물 임대 문제로 이철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이철'은 지난 선거에 별로 얼굴을 비추지 않던 '이준'이 갑자기 나타났기에 다소 원망하는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면서도 금세 소탈하게 하하 웃으며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반가이 맞이하며 자리를 권하고는 '이준'의 방문 목적인 본론부터 듣기로 한다.

 

<이형 지난 선거에는 선전했소. 그 용기 높이 사고 싶소. 그런데 이제 울산의 야당 위원장이라도 장소를 빌려주지 않으면 우리 "울사협"은 아무데도 갈 곳이 없는 처지가 되었소. 전세 계약을 했던 집 주인도 못 들어오게 하니 이제 갈 데가 없어졌소, 제발 부탁이니 이형이 하고 있는 현대외국어학권 건물 3층을 우리에게 좀 빌려주시오>

 

이철은 한때 심정적으로 그들과 뜻을 같이했고 기독교 장로로서 이 단체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던 목사들과도 협조를 아끼지 않았고 종종 '이준'과 함께 참여하기도 했던 단체인지라 별 주저함이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이 가는 듯 거절하지 않는다.

 

<내가 도울 여력이 있다면 지금은 장소를 빌려주는 것 말고는 달리 크게 도울 것이 무었이겠소. 그러니 걱정말고 좋은 날을 골라서 언제든지 이사를 하도록 하십시오.>

 

<이형, 고맙소 내 그런 대략 기대는 하고 '울사협'에다 언질을 주고 왔습니다만, 지금 우리 형편이 재정적으로 월세는 물론 전세를 걸만 한 힘도 안되니 우선 전세 계약금 조금 받고 차후에 모금이 되는 데로 잔금을 지불토록 할 터이니 양해를 해주시오>

 

이철은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고, 사정을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여러 말하지 않고

 

<그렇게 하세요.>

 

하고는 화제를 다시 문학과 비평 그리고 울산의 정치적 현안 관심 문제로 돌린다.

 

이렇게 해서 1988년 구월 초사흘, 중구 성남동 196-6번지에 민주노동운동가들과, 민주화 추진세력, 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울산 민주화 운동과 한국 노동운동의 산실이기도 했던 "울산사회선교실천협의회"의 역사적인 산실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고 동시에 한 10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해직 교사들인 노옥희, 정찬모, 장영권등이 중심이 된 울산교사협의회도 함께 하여 온갖 억압과 시련 속에도 민주화 운동의 대문을 활짝 열게 되었다.

 

밤낮 없이 경찰 정보요원의 삼엄한 감시 하에서도 저녁시간이면 '이철'2층 사무실 반쪽은 여전히 외국어를 가르치는 학원이기에 수강생이 모여 들고, 3층과 증축한 옥상 4층 조립식 "울사협" 사무실에는 울산 민주노동운동의 주동자들과 민추협의 시민운동가와 일부 종교인 그리고 울산대학 총학생회 간부와 민족학교를 운영하는 장태원씨, 이어서 전국교직원 노동조합 결성을 위한 해직 교사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 투쟁의 열기를 높인다. 이 때부터 이 건물 옥상 큰 물탱크에는 물 대신 항상 화염병들로 가득 가득 차 있었다.

 

연일 노동운동의 주동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전투경찰이 건물을 포위하고 형사들이 수색을 하고 또 정체불명의 테러가 자행되는 판국이라 정치를 하는 신공화당 지구당위원장에다 전직 교사이기도 했던 '이철'의 처지도 매우 곤혹스러웠다.

 

출입구 계단까지 전투 경찰이 몇 주 째 막고 있으니 이철이 운영하던 외국어학원에 학생들도 겁을 먹었던지 차츰 떨어져 나가고, 울산경찰서장은 수차 은밀히 형사를 보내어

 

<저들을 내쫓으면 내가 전세금 전액을 보상해 주겠으니 내보내달라.>

 

는 말도 서슴지 않았으나 이철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내 집에 세든 사람들이니 그들을 임대기한까지는 보호 할 의무가 나에게 있습니다.> 하고는 건물주로서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임대인의 의무에 최선을 다했다.

 

정체불명의 테러 사건과 전투경찰의 건물 포위, 이듬해 민주, 민족, 인간화 교육의 기치 아래 일어났던 참교육의 함성이 들불처럼 맹렬한 기세를 떨쳤으나, 독재의 군화 발에 무참히 짓밟히고 탄압이 그치지 않자, 민주당의 노무현, 박영, 최영근의원이 현대중공업 노사분규 현장을 찾은 후에 이곳 중구 성남동 "울사협"에도 들려 이들의 사정을 듣고 현장을 파악하고 당에서 재야 민주화 세력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마려키 위해 3층 울사협 사무실을 방문하기도 했다.

 

모든 정치, 문화 교육 권력들이 적대시했던 '울사협' 또한 울산사회가 보수와 개혁 진영이 극명하게 분열 대립되어 가고 노동자들의 대투쟁과 전투경찰의 진압작전이 마치 육해공군이 합동작전하는 전쟁을 방불케 했다. 이철의 주위에 학원연합뢰 간부들이 찾아와 귀뜸을 하고 또한 지역 정관계 유지들은 은근히 이철에게 농담반 진담반 압력을 넣는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울사협에게 당신이 사무실을 내준 이상, 앞으로는 이철 위원장에게 울산의 보수 유권자들이 절대 표를 주지 않을 것이고 지난번 총선처럼 몰표도 없을 것이니 두고 보시요>

 

-울산사회선교실천협의회-

'한국 노동운동의 메카 울산'이라는 명예를 지키려면 금일 '민노'총의 산실(울산사회선교살천협의회)에서부터 울산 노동운동의 역사를 소상히 밝히고울산공단 건설을 위해 피땀 흘렸던 산업전사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노동운동의 기념비를 세우며선배 기술기능인들의 노고를 오늘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될것이다.‘

울산을 ‘한국 노동운동의 메카라고 한다그 중심에 섰던 ‘민노총의 산실 ‘울산사회선교실천협의회’(이하 ‘울사협’)의 사무실이 중구 성남동 196번지 3층 건물 즉 이철이 운영하던 현대외국어학원 건물로 들어온 것은 1989년의 일이었고이 건물은 나중에 비좁아 다시 1개 층을 더 조립식으로 증축한다(3, 4층 울산협 시무실). 초기 ‘울사협의 주축은 형제교회 비롯해 천주교예장(예수교장로회), 성공회기장(기독교장로회), 구세군 등 여러 종파들이 한데 어울린 기독교 단체들이었다.

 

 

군부독재 시절인지라 이름은 ‘기독교 선교라는 보호색을 띠어야만 했다당시 NCC(진보 성향의 ‘기독교교회협의회’)는 학생운동노동운동의 총본부나 다름없었다그러다 보니 불신자들까지도 뜻을 같이하는 동지라면 NCC 속으로 속속 들어왔다. ‘울사협 손덕만, 전재식 신부를 중심으로 가톨릭성공회개신교 등 신·구교가 손을 맞잡은 가운데 서서히 조직을 갖추어 갔다울산성당 손덕만 신부와 대현교회 윤웅오 목사가 공동의장을전재식 신부가 사무국장을 맡았는데19869월에 야음동 대현교회에서 울사협 창립총회를 열어 임원이 구성되고, 며칠 후에 창립집회는 울산성당에서 개최했는데 곧 이어 부설 ‘노동문제상담소가 만들어지고 장태원 선생이 상담소장, ‘전교조의 씨앗이 된 노옥희 씨가 간사를 맡으면서 사회운동단체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이후 박종희 씨가 내려와 사무국장을 맡았을 때는 성남동 ‘울사협’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던 시기였다.

 

 

이 무렵 노동자의 기본생존권 투쟁(1987 6월 항쟁)이 불붙기 시작하면서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등 노동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노사가 극한대치로 맞선 가운데 한때 그 본부가 되기도 했던 이 단체는 딴 곳에다 사무실을 얻기가 참으로 난감했고오갈 데 없는 어려운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사무실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테러가 일어났고전경들은 건물을 장기간 포위하며 출입자를 통제하는 시기가 계속 이어졌다관할 경찰서장은 건물주인 필자에게 그들을 당장 내보내라고 했으나 듣지 않자 나중에는 돈을 줄 터이니 쫓아내라고 회유와 압력을 거듭하기도 했다이철은임대인의 의무라는 명분을 내세워 이분들이 계약기한 3년을 다 채우고도 스스로 나갈 때까지 보호해주려고 애썼다.

 

 

이 와중에 결국 학원을 다니던 학생들까지 감시를 받으며 출입이 통제되자울산의 설립 1호 외국어학원은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그래도 그 이후 민주화 투쟁이 승리로 기록되면서 울사협에 같이 참여했던 노동자전교조 교사대학생들 모두가 민주노총 탄생과 함께 빛을 보게 되었다사무실 또한 더 많은 돈을 주고 신도시’ 남구 같은 곳의 크고 멋진 건물로 이전을 하게 되었다그리고 이분들은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과거의 낡고 비좁은 건물( 당시 성남동의 요지에 지은 지 9년 된 괜찮은 철근콘크리트 건물)에서 고난의 시절을 견디느라 고생했다는 생각 뿐, 금일의 변화된 꿈같은 현실을 비교하며 서로 위안을 삼는 듯 참으로 서글픈 격세지감을 느끼게도 된다.

 

마치 요즘 집권여당 민주당에는 과거 미약했던 고난의 야당 시절의 투사들은 간곳이 없고 모두 한번 여당은 평생 여당출신 아니면 퇴직 공무원들 출신의 새로운 얼굴들만 넘쳐나는 듯하니 아마도 고난의 시절을 감내했던 분들은 이미 퇴출되었거나 아니면 변질된 당의 체질과 기회주의자들에게 실망하고 혹은 밀려나 조용히 관망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 이분들 중에는 민노총의 막강한 조직력으로 정계로도 진출한 끝에 구청장국회의원교육의원교육감 등으로 선출되는 참으로 정치하기 좋은 시절이 도래했다그러나 누구하나 그 시절 탄압 받으며 오갈 데 없이 어려운 처지에 놓였던 그들에게 활동 공간을 제공하며 고통을 참아 온 사람들의 인내와 고충을 기억하거나 감사하는 마음이 결여 된 것 같아 서운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울산협 사무국장 박종희씨와 전교조 소속 노옥희양은 그 와중에 각기 짝을 만나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고그때 울산대학교 결혼식장까지 찾아가 축하해준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후일 교육위원, 야당의 시장 후보가 되기도 하고 교육감까지 되었지만 누구하나 그 시절을 기억하며 끝내 감사의 말 한 마디 전하는 이 없었다.

 

오히려 매년 교육청 대강당에서 매년 해오던 국제어린이축제’ (1986년부터 교육환경이 열악한 울산의 어린이들에게 세계화의 꿈과 희망을 심어주려고 시작한 울산에 거주하는 세계 32개국 어린이가 참여하는 연례행사) 관계로 평소 예년에 하든대로 두어 차례 교육감 면담을 요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고 심지어 사무실에 있으면서도 찾아간 방문자를 바쁘다는 핑계로 냉대했다. 어쩌면 도움은커녕 정치적 길목에서 이철과 어설프게 마주치게 되는 서로 방해꾼의 인상만 남아있을 뿐이다당시 울사협이 더 넓고 좋은 건물을 얻어 떠난 간 후 건물 옥상 물탱크에 가득 차 있던 화염병과 건물 뒤편에 버려진 1톤 트럭 몇 대 분량의 쓰레기를 홀로 치우느라 진땀을 뺐던 일이 지금 와서 새삼 되살아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오히려 전교조 출신의 교사들보다 그래도 한 두 사람민주화 운동의 천리행군을 결행했던 이상범 전 현대차 노조위원장 겸 전 북구청장과 윤종오 전 청장 겸 국회의원은 후일 찾아와  그 어렵던 시절에 우리가 기댈 언덕이 되어준 그 건물을 민노총 산실의 기념관으로 영구보존 해야 한다고 했던 말이 이철의 가슴을 울리며 오래 기억에 남는다현대그룹 노동자들의 기본생존권 쟁취를 위한 결사투쟁 의지와 민주화의 열기가 불타오르고 그에 대등한 공권력의 탄압 또한 극에 달했을 때 이곳 역사의 현장을 속속 찾아 격려해주던 당시 야당 인사들이 많았다그들 중엔 후일 대통령이 된 노무현·문재인 변호사그리고 김광일 변호사최영근 국회의원 등 전·현직 정계의 거물들도 있었다지금은 그 건물마저 형체도 없이 사라졌지만 울산 민주화운동의 산실이었던 가장 극렬했던 한 시대의 역사의 현장으로 쉬 잊혀지지 않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근자에 듣자하니 울산민주화운동 관련자 예우 및 지원 조례 제정 관련 간담회를 실시한다고 하고 이 조례는 울산에 거주하는 민주화운동에 공헌하거나 희생된 사람 그리고 그 유가족에 대한 지원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으로 윤덕권 시의원이 대표발의를 준비 중이라 한다. 울산노동인권센터장이 상주하며울산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과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노동법률상담, 노동심리상담, 노동인권교육으로 함께 하고 있다한다. 참으로 탄압 받던 노동자들이 옛말하며 스스로 권익을 찾고 심지어 노동자 귀족이란 소릴 듣는 좋은 시절이 왔다 비록 욕은 들어 먹을지라도 요즘은 누구나 참 정치도 하기 좋은 시절이 도래했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단다, 모든 직종을 망라한 시미의 권리를 교사는 교사의 권리, 노동자는 노동자의 권리를 찾고 더 밝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상생하는 노사정의 협력과 이해를 구현하기 위해최대한 역사의 기록을 충실히 남기겠다는 나의 노력의 흔적이울산민주화의 역사를 올바로 기술하는 계기가 되고 진정한 미래의 역사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최근 카카오 김범수 의장은 죽기 전에 재산 10조원의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했다. 결심의 근원에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중 하나로 미국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1803~1882)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를 꼽는다. ‘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만들어 놓고서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우리 모두 밝은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참 용기를 가지고 어떤 곳에서라도 진실을 밝혀 나가야겠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역사의 순리에 따라 모든 진실은 언제고 밝혀지고야 말고 정의는 승리하는 법. 민주주의의 파수꾼이 이 땅의 빛과 소금이 되고 참 빛이 어둠을 물리칠 때 곧 민주화가 실현되는 밝은 새벽이 열릴 것이다. 끝으로 부산에서 서울까지 천리 행군을 마치고 청와대 앞에서 행한 김진숙 지도위원의 발언문 전문을 소개하며 울산 민주화의 역사’ 8회 연재를 맺는다.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는가.전태일이 풀빵을 사주었던 여공들은어디서 굳은살 배긴 손으로 침침한 눈을 비비며아직도 미싱을 돌리고 있는가.아니면LG틔윈타워 똥물 튄 변기를 빛나게 닦다가 짤렸는가.아니면인천공항의 대걸레만도 못한하청에 하청노동자로 살다가 짤린 김계월이 됐는가.그도아니면20년째 최저임금 코레일 네트웩스의 해고자가 되어서울역 찬바닥에 앉아 김밥을 먹는가.노동존중 사회에서차헌호는 김수억은 변주현은 왜 아직도 비정규직인가.왜 청년들은 비정규직으로 차별과 멸시부터 배워야 하며페미니스트 정권에서왜 여성들은 가장 먼저 짤리며 가장 많이 죽어가는가.일자리를 최우선으로 지키겠다는 정권에서대우버스, 한국게이츠, 이스타 노동자들은왜 무더기로 짤렸으며쌍차와 한진 노동자들은 왜 여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가.박창수, 김주익을 변론했던노동인권 변호사가 대통령인 나라에서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굶고 해고되고 싸워야 하는가.최강서의 빈소를 찾아와미안하다고 말한 분이 대통령이 된 나라에서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여전히죽어가는가.김용균, 김태규, 정순규, 이한빛, 김동준, 홍수연은왜 오늘도 죽어가는가.세월호, 스텔라데이지호는왜 아직도 가라앉아 있으며유가족들이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가.이주노동자들은왜 비닐하우스에서 살다 얼어 죽어야 하는가.왜 문정현 신부님은 백기완 선생님은박정희 정권에서 시작한 싸움을 아직도 멈추지 못하는가.전두환 정권에서 해고된 김진숙은36년째 해고자인가.그 대답을 듣고 싶어 34일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그 약속들이 왜 지켜지지 않는지 묻고 싶어한발 한발 천리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36년간 나는 유령이었습니다.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습니다.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함께 싸워왔던 당신이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후에도여전히 해고자인 내가 보이십니까.보자기 덮어쓴 채...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텔레그램 URL복사

최신기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울산포스트. All rights reserved.